2008년 3월 30일 일요일 앤필드 경기장에서는 리버풀 FC와 에버튼 FC 사이의 역사적인 177차 리그 전이 벌어집니다. 이 머지사이드 (*편집자 주: 리버풀이 주도인 머지사이드 주를 의미) 더비는 전통적으로 “프렌들리 더비”라고 불리는데, 리버풀 시에는 한 가족 안에 레드 (*편집자 주: 리버풀)와 블루 (*편집자 주: 에버튼)의 서포터즈가 모두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양대 클럽을 지지하는 가족과 친구들이 하도 많다 보니, 에버튼 팬과 리버풀 팬은 그라운드에 나란히 앉아 더비경기를 관전하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어린 시절의 아픈 추억
리버풀 서포터로 성장하면서 내가 겪은 경험은, ‘더비’를 둘러싼 분위기 (아우라)가 원래 의도처럼 항상 우호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해주었습니다. 에버튼과 리버풀 팬 간에는 영국 다른 더비에서 볼 수 있는 형태의 폭력은 절대 일어나지 않지만, 1년 중 어느 시기에는 친구, 가족 간에 긴장관계가 조성된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다음 더비 경기가 코 앞에 닥쳤든 말든 상관 없습니다. 더비에서 에버튼에게 패배한 다음이면 몇 주 동안 나와 내 동생의 삶은 비참했습니다. 심지어 중요 경기에서 리버풀이 다른 클럽에게 지기라도 하면, 에버튼 팬은 몇 주 동안 내내 고소해 했습니다. 리버풀 팬으로서 다행히 그런 순간은 드물었지만, 예전의 불쾌한 기억을 되살리는 것은 여전히 고통스럽습니다.
가정문제
리버풀과 에버튼의 대결에서 가장 독특한 요소는 아마도 가까운 친척들끼리도 어느 팀을 응원하느냐에 따라 편이 갈라질 수 있다는 점일 것입니다. 내가 기억하는 가장 오래 된 기억은, 어느 추운 일요일 새벽 5시에 억지로 깨어나 에버튼의 광적인 팬이었던 할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1966년 FA컵에서 우승한 에버튼 팀이 지붕 없는 버스를 타고 리버풀 시내를 도는 것을 구경간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블루스(에버튼)에 대한 할아버지의 광적인 지지와, 에버튼의 위대한 골 넣는 기계 딕시 딘(Dixie Dean)에 얽힌 무용담도, 내 동생과 내가 리버풀 서포터즈가 되는 것을 막지는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입장이 바뀌었습니다. 동생이 어쩌다 보니 에버튼 팬과 결혼했는데(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그러다 보니 순수하게 에버튼 팬으로만 구성되어 있는 처가가 생긴 것입니다. 동생이 1996년에 딸을 낳았을 때, 동생과 나는 ‘블루노즈’(에버튼 팬들을 가리키는 속어입니다.)들의 어두운 힘에 굴복하지 말자고 다짐했습니다. 그래서 매년 크리스마스 때면 아기용 리버풀 유니폼을 선물하고 매년 생일에는 리버풀 유니폼을 입은 귀여운 테디베어를 선물하면서 조카를 확실한 리버풀 팬으로 만드는 장기 전략에 돌입했습니다.
결정적인 순간
그리고 마침내 결정적인 순간이 왔습니다. 조카가 앤필드에서 열리는 리버풀 경기를 직접 관전하게 된 것입니다. 5살 된 내 조카는 리버풀의 홈 경기용 새 유니폼을 입은 눈부신 모습으로 양팀이 경기장에 입장하는 모습에 무척이나 매료되어 앉아 있었습니다. 분위기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습니다. 이탈리아에서 온 라치오(Lazio)를 상대로 하는 시즌 전 친선경기를 구경하기 위해 경기장에는 관중이 꽉 차 있었습니다.
그런데 불행히도 우리의 계획은 빗나갔습니다. 조카는 엘 하지 디우프(El-Hadji Diouf)의 마술 같은 솜씨와 브루노 셰루(Bruno Cheyrou)의 유연한 패스에도 유혹 당하지 않았습니다. 내 기억에 이 둘은 아마 리버풀 FC에서 뛴 선수 중 최악일 것입니다. 2주도 안돼서 조카는 구디슨 파크(에버튼 구장)로 마음을 옮겨가 버려서 나를 망연자실하게 만들었고, 동생은 다섯 개나 되는 유아용 리버풀팀 유니폼을 처분하려다가 결국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곤경과 불화
리버풀과 에버튼의 앙숙관계로 동생과, 나중에 아내가 된 당시 여자친구와의 연애에도 지장이 초래되었습니다. 당시 제수씨는 에버튼 팬인 자신의 아버지에게 새로운 남자친구가 얼마나 멋진 일을 하는지 얘기함으로써 좋은 인상을 심어주려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동생의 예비 장인의 유일한 질문은 “그 놈이 얼마를 받는지는 상관 없다만, 블루노즈 맞냐?” 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20년에 걸친 축구로 인한 가족 불화의 토대가 마련되었습니다. 일찍도 시작된 것입니다.
제수씨를 처음 만난 지 2주 정도가 지난 일요일, 동생은 제수씨 부모님 댁에 점심식사 초대를 받았습니다. 점심식사 후 1987년 리틀우즈 챌린지 컵에서 리버풀과 아스날의 결승전을 TV로 봤는데, 아쉽게도 리버풀이 2-1로 아스날에게 무릎을 꿇었습니다. 하지만 동생은 리버풀이 지고 있는 것을 너무 좋아하는 예비 장인의 모습에, 경기가 끝나기 25분 전에 그 집을 나와버렸습니다. 동생이 예비 장인과 다시 대화를 나누게 된 것은 6주나 지난 다음이었습니다.
나는 아직도 머지사이드 더비가 본질적으로는 ‘프렌들리 더비’가 맞다고 생각합니다. 간혹 친구와 가족 간의 관계가 망가지기는 하지만요.
- 개리 보스톡 (Gary Bostock)
참고자료
위키피디아 – 풋볼 리그컵 (2008년 3월 10일 검색) 리버풀 FC 홈페이지 (2008년 3월 10일 검색) BBC 스포츠 (2008년 3월 10일 검색) 위키피디아 – 머지사이드 더비 (2008년 3월 10일 검색)
예상해 봅시다!
이번 프리미어리그에서 4위를 차지할 팀을 예상해보세요. 머지사이드 더비의 에버튼과 리버풀 중 한 팀일까요? 혹은 다른 팀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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