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Football Culture > 락커룸 > 만남: 호세 ‘메흐디’ 파리아, 죠반 비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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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인이고, 어느 정도 나이가 들었다면 1986년 월드컵을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머리에 떠오르는 것은 디에고 마라도나(Diego Maradona)의 악명 높은 ‘신의 손’ 사건일 것입니다. 아니면 아르헨티나의 준결승전 진출, 잉글랜드 8강 탈락이라는 결과를 초래한 그의 터무니 없고 이의도 제기되지 않았던 드리블을 떠올리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결국 아르헨티나는 결승에서 서독을 3-2로 극적으로 이기고 우승컵을 거머쥐었습니다. 놀라운 일은 아니지만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공통적으로 지워진 것은, 잉글랜드가 단지 두 번째 경기만 치루고 탈락할 뻔 했다는 사실입니다. 호세 파리아(Jose Faria) 감독과 죠반 비에라(Jorvan Vieira) 코치가 지휘하는 모로코와의 경기였습니다. 개인적으로 나는 이 경기를 뚜렷이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에 지난 해 이 두 사람을 만났을 때 흥분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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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제가 그 경기를 그렇게 생생하게 기억하는 까닭이 무엇이었을까요? 저는 그 당시 월드컵 경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집에서 봤는데 이렇게 생생하게 기억하는 경기는 이 경기가 처음입니다. 잉글랜드는 포르투갈 (그때는 지금처럼 강팀이 아니었습니다) 에 0-1로 진 다음이라, 예상 밖으로 나타난 모로코에 한 번 더 지면 탈락이라는 망신을 당할 판이었습니다. 경기 자체만 놓고 보면 잉글랜드 입장에서는 완전히 재앙이었습니다. 브라이언 롭슨(Bryan Robson) 주장은 부상으로 교체되고 레이 윌킨스(Ray Wilkins)는 주심에게 공을 던졌다가 퇴장 당하고, 기온이 너무 높아서 무기력한 경기를 펼치던 잉글랜드 선수들은 상대팀 골문 근처에 가보지도 못했습니다. 모로코 선수들이 잉글랜드가 완전히 자신감을 상실했다는 것을 간파하고 급소를 공략했다면 잉글랜드가 탈락했을 것이라는 생각을 저는 항상 해왔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경기를 비기는 것이 목적이었고, 그 목적을 달성했습니다. 잉글랜드는 예선전 마지막 경기에서 컨디션을 회복하고 폴란드에 3-0으로 승리하여, 포르투갈을 3-1로 격파하고 조 1위로 뛰어오른 모로코에 이어 조 2위로 예선을 통과했습니다. 이변이 속출하는 조였습니다. 아틀라스 라이온즈(Atlas Lions)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모로코팀은 불운하게 서독과의 경기에서 로타 마데이어스(Lothar Matthaus)의 막판 프리킥에 0-1로 패했으나, 본선에 진출한 최초의 아프리카 국가라는 역사적 기록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이는 지금까지도 모로코 축구 사상 월드컵 본선에서 올린 최고의 성적입니다.
이들의 성공을 지휘한 사람들이 브라질 출신으로 모로코에 정착한 호세 파리아와 죠반 비에라입니다. 호세는 ‘메흐디(Mehdi)’(아랍어로 ‘인도 받는 자’)라는 이름까지 얻었습니다. 죠반 비에라는 올해 초, 아시안 컵 대회를 불과 2개월 남기고 이라크팀을 맡아 혼란과 준비 부족 가운데서도 아시안컵에서 우승한 일로 신문지면을 장식한 바 있습니다. 이후 그는 전쟁으로 상처입은 이라크에서 축구대표 감독직을 수행하기가 불가능하다는 말을 남기고 사임했습니다.
저와 두 사람의 만남은 우연히 이루어졌습니다. 작년 저는 모로코의 수도 카사블랑카에 있는 영국문화원 어학 센터에서 일하다가 2006 독일 월드컵을 기념하기 위해 소규모 팀으로 구성된 토너먼트 대회를 조직했습니다. 우리 팀이 우승을 했지만 진정한 하이라이트는 경기장을 벗어나 관객 두 사람을 소개 받을 때였습니다. 처음에는 제가 이 브라질 사람들과 왜 악수를 하고 있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월드컵’과 ‘1986’이라는 말을 듣자 멕시코 몬테레이에서의 운명적인 무승부가 퍼뜩 떠올랐습니다. 나는 그 기회를 빌어 모로코 동료의 통역으로, 제 마음 속에 항상 자리잡고 있던 궁금한 점을 물었습니다. 잉글랜드팀과 마라도나와의 역사적인 만남 이전에 모로코가 잉글랜드를 탈락시켜버릴 수도 있었을 텐데 모로코가 그때 그렇게 조심스러워했던 까닭이 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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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아가 통역을 통해 대답했습니다. “잉글랜드와 비기면 마지막 경기에서 포르투갈을 이길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그게 처음부터 우리 계획이었습니다. 잉글랜드는 리네커(Lineker), 반즈(Barnes), 롭슨 같은 선수들이 있는 강팀이었습니다. 그런 팀과 비기기만 해도 모로코로서는 엄청난 성과였죠.” 하지만 정황상 선수가 열 명 밖에 안 되는 잉글랜드를 이기려는 시도를 했어야 했다고 느끼지 않았을까요? “그럴 필요가 없었습니다. 우리가 공격을 했다면 허점을 보이고 나중에 반격을 허용했을 것입니다. 모든 게 작전이었습니다.” 모로코팀을 조1위로 16강전에 올려놓은 사람들이니 따질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서독과의 경기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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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아는 “아까운 경기였습니다. 경기 내내 우리 팀은 한 골도 허용하지 않았고, 연장전에 들어가면 이길 수 있다고 확신했습니다. 그들은 더운 날씨에 익숙하지 않았지만 우리는 익숙했기 때문입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비에라가 쓴 관용어구를 말 그대로 옮긴다면 ‘그들의 다리가 풀려버릴 것 (their legs would go)’이라는 것이었습니다. 파리아가 부연설명을 했습니다. “많이 지친 게 눈에 보였습니다. 승리를 확신했고, 그 다음에는 어떤 성과가 나올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습니다.” 어찌 됐든 ‘메흐디’ 파리아는 이 성과로, 거스 히딩크가 한국에서 받은 것만큼이나 모로코에서 영웅 대접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뛰었던 미니 토너먼트에 대해 파리아에게 의견을 구하자, 영국 축구에 대한 브라질인의 또 다른 견해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파리아는 미소를 짓더니 저를 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전형적인 잉글랜드인처럼 뛰더군요!” 이게 칭찬인지 뭔지 헷갈려 하는데 그가 말을 이었습니다. “항상 자기 자신이 아니라 팀을 먼저 생각한다는 거죠. 모로코 선수들은 달라요. 늘 자신을 위해 경기합니다. 그 사람들한테 팀을 먼저 생각하도록 만들기는 아주 어려워요.” 그는 품위가 있었고, 저는 어려서부터 배운 대로 했다는 것이 기뻤습니다. 축구는 아무튼 단체경기인데다, 그런 유명감독으로부터 제 경기에 관한 관전평을 듣는다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은 아니니까요.
- Football Culture 편집장 마틴 구시 (Martin Goos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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